피터 바돌로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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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 [편집]
IRC 부사장이자 왕립아시아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분. 미국과 캐나다 국경인 나이아가라 시티에서 태어났다.
특히 한옥 지킴이로 유명한 분으로서 한옥을 사랑한 계기가 된 건 20대에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와서 우연히 강릉에 있는 한옥에 살면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.
그 뒤 봉사 활동이 끝난 뒤 한국에서 살기 위해 1973년에 성북구 동소문의 한옥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. 한옥이 좋은 이유로 그는 창호지, 문, 장판지, 벽 속의 흙 등이 다 인간적이기 때문이라는 걸 꼽았다. 또한 1980년대부터 해군의장대와 결연을 맺고 지방 출신 5명의 하숙생에게 방을 제공하고 있으며 한옥 같은 우리나라 옛날 집에서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.
그러다가 2005년에 성북구 동소문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었을 때 그는 2007년에 서대문 시민들과 같이 서울시를 상대로 재개발 구역 및 취소 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한 끝에 2009년 6월 4일에 소송에 이기면서 취소가 되었다.
한옥 뿐만 아니라 그는 2017년에 독도가 석도와 동일한 명칭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고흥 사람들의 문화가 어떻게 독도에 올 수 있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.
특히 한옥 지킴이로 유명한 분으로서 한옥을 사랑한 계기가 된 건 20대에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와서 우연히 강릉에 있는 한옥에 살면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.
그 뒤 봉사 활동이 끝난 뒤 한국에서 살기 위해 1973년에 성북구 동소문의 한옥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. 한옥이 좋은 이유로 그는 창호지, 문, 장판지, 벽 속의 흙 등이 다 인간적이기 때문이라는 걸 꼽았다. 또한 1980년대부터 해군의장대와 결연을 맺고 지방 출신 5명의 하숙생에게 방을 제공하고 있으며 한옥 같은 우리나라 옛날 집에서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.
그러다가 2005년에 성북구 동소문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었을 때 그는 2007년에 서대문 시민들과 같이 서울시를 상대로 재개발 구역 및 취소 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한 끝에 2009년 6월 4일에 소송에 이기면서 취소가 되었다.
한옥 뿐만 아니라 그는 2017년에 독도가 석도와 동일한 명칭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고흥 사람들의 문화가 어떻게 독도에 올 수 있었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.
2. 방송 활동 [편집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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